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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행복한 동행 11월호

by 석규 2012. 1. 9.

친구를 말하다


친구를 말하고 친구를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친구가 창피하거나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친구로 인해 내 자신이 걸어왔던 모든 길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최고다! 나는 너희들과 끝까지 간다!”라고 외쳤던 청춘의 편린은 어느덧 케케묵은 기억이 될 정도로 세상은 나와 우리를 바꾸어 놓았다. 찧고 까불던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느새 끊어지고 그냥 저만치서 묵묵히 나를 보는 친구가 절친한 친구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조건없이 준다는 것, 앉아 있는 누군가를 일으켜 준다는 게 어려운 세상인데 손을 뻗어 준 친구가 있다. 케이시. 켄터키 주에서 온, 켄터키 치킨을 싫어하는 미국녀석이다. 나만이 갖고 있던 '친구'의 과정을 하나도 밟지 않은 녀석의 당당함에, 나의 틀에 박힌 모습은 모두 사그라졌다.

일본 고학 시절,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늘 어려웠던 상황에서 케이시는 나를 몇 년간 멀리서 관찰했다. 밥 먹을 돈이 없어 동기들과 떨어져 도서관 앞에 앉아 햇빛을 덤덤히 원망했던 내 모습을.

케이시가 밥 먹으라고 쥐어 준 돈을 보며 친구란 단어를 반복해서 되뇌었다. 내게 도움을 원하는 친구인가? 뭔가를 얻어내려고?

“케이시. 나 돈 바로 못 갚아. 지금 상당히 힘들어.” “괜찮아. 안 갚아도 돼.”

“나 정말 이러면 너한테 미안한데….” “야! 내가 너처럼 여기 앉아 있으면 어떡할래?”

“….”

나를 알아주는 친구는 과연 몇이나 될까? 억지로 나를 봐 주는 친구가 아니라 나를 직시하고 과감히 손질해 줄 수 있는 친구.

그깟 점심 값으로 케이시는 나와 친구가 되었다. 서로의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이상한 친구. 케이시는 이별의 아픔까지도 장난스러운 말 뒤에 숨겼다.

“야! 돈갚아.” “싫어. 안 갚아도 된다며?”

“이제 갚아! 내일 너네 나라로 가잖아.” “싫어! 안 갚아….”

티격태격하던 밤을 지나 다음 날이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먹먹한 마음을 뒤로하고 악수와 포옹으로 헤어짐을 대신한 그때, 케이시는 내 어깨에 떨어뜨리지 말아야 할 것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유석규 님| 《 고마워 아리가또 땡큐》저자

-《행복한동행》2011년 11월호


좋은생각 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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